개인적인 독후감입니다.

소설 ‘좁은문’은 20대 초반 제롬이 두살 위 친척누나 알리사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펼쳐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제롬과 알리사는 둘 다 초월적으로 신성하게 느껴지는 서로에게 걸맞는 상대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열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를 불태운다.

1. 제롬 -
제롬의 내면은 자유롭고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세계이다. 미숙하지만 격동하는 열정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제롬. 감정의 폭풍들, 시절의 노래…
그에게는 내면세계가 현실보다 더욱 실제적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알리사와의 관계가 오해로 얽혀 미궁으로 빠져갈 때, 그는 자신이 경멸하는 오지랖 이모가 자기 대신에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2. 쥴리에트 -
쥴리에트는 알리사나 제롬과는 다르다. 슬퍼해도 곧 털고 일어나서 그냥 잘 살 것 같다.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쥴리에트는 제롬을 좋아하지만 제롬의 눈에도 마음에도 그녀가 머물 자리는 없다. 알리사에게 푹 빠져 내면세계에 깊이 머물고 있는 제롬은 쥴리에트와 몸이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쥴리에트에 대한 제롬의 인식이 바뀌는 부분이 흥미롭다. 제롬의 친구는 쥴리에트를 흠모하는데, 얼치기같은 그 친구가 묘사하는 쥴리에트는 제롬이 알고 있는 쥴리에트와 전혀 다르다. 그 쥴리에트가 내가 아는 이 쥴리에트와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이 에피소드는 작가가 누군가에게 무관심했다가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사뭇 놀랐던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상대에게 이해를 받는 일은 많은 부분이 운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사람의 인식은 ‘목표’에 따라 초점을 맞추어 바라볼 대상과 삭제할 배경을 결정한다. 전에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롬의 사례를 보아,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자신과 달라 이해하기 힘든 반대성향의 사람을 볼 때 편견을 배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소통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

3. 알리사, 독실한 믿음과 상처의 사이 그 어딘가 -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알리사는 제롬에게 ‘각자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점차 시들어간다. 그녀가 어떤 신앙적인 이유를 내세울지라도, 그녀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그녀를 사로잡고 있다고 느껴진다. 알리사의 신앙적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알리사는 묶여있다.
알리사는 내면세계에 갖힌 듯하다.
나는 제목의 좁은문을 알리사의 삶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 문은 좁은문이라기보다는 닫힌문 같다. 그녀가 조금만 더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위해줄 수는 없었을까?

4. 내면세계와 현실세계 그 사이 -
고통 속에 있는 두 연인, 알리사와 제롬을 보며,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감정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것인가 견고한 것인가. 실재하는가. 질문하게 된다.
초반부에서는 제롬의 내면세계가 물질세계보다 커보인다. 그런데 이는 제롬이 알리사와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알리사와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은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을 가져오고 만다. 결국, 현실세계가 내면세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 같다.

- 물질세계의 한계에 타협하고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이는 쥴리에트,
- 그 사이를 오가는 중간자 제롬,
- 결국 하늘로 돌아간 알리사.

인간은 피어났다가 시드는 꽃처럼 생명을 다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물질적인 실체, 몸을 가지고 있어서 아름답다. 이상이 가진 완벽함과 거룩함이 주는 쾌락은 강렬하나, 연약하고 무거운 몸으로 흐르는 시간을 타고 사는 현실세계 없이는 유리되어 떠돌 뿐, 실체가 없이 느껴진다... 이상과 현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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