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오늘의 내가 쓸모없고 완전 실패로 Total Failure느껴질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때때로 느끼곤 한다. Been there, done that.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정말 정말 도움이 안 된다.
그런 감정은, 바닥을 치고 올라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집중할 기회를 주는 에너지이다. 분노는 정말 에너지이다.

다른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비교하라.


지금 이렇게 실수를 했다 한들, 여기에 이렇게 뭉게고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더 나아지는 것을 추구할 것인가.

어느 시점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까?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해내는것,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제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하며,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하는 것.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등.
어떤 일이 벌어져서 힘들다는 인식 없이 살아가는 것이 그런 인식을 때때로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언젠가와 다르다.

내가 정말 달라진 것일까?
달라진점으로는
이메일함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유지하기 시작했다. 새로 쌓인 10개 이메일을 망설임 없이 정리할 수 있다.
캘린더를 더 자주보게 되었다... 캘린더를 보다 보면 언제 무엇을 하고,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잘 실천해낸 작은 일은 오늘 당장, 내일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시작하게 해준다.

작은 좋은 습관들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매일 조금 더 유리한 시작점을 제공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나선 positive spiral 을 따라 상승했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나서는, 어떻게 이런 고지(높은 곳)에 이른 것인지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그런 다각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된 결과는 그러한 작은 습관들이 쌓아온 것이다.
I ask myself what brought the positive change in my life. Then, I realize that the small habits I’ve sticked to have built up the transformation.

그러니까, 그런 작은 습관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면 그 성이 돌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기 쉽다.

그런 작은 습관, 작은 루틴이 중요하다.

작은 좋은 습관들은 축복이다.
정말로 축복이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못하는 변화를 이끌어낸다.



개인적인 독후감입니다.

소설 ‘좁은문’은 20대 초반 제롬이 두살 위 친척누나 알리사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펼쳐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제롬과 알리사는 둘 다 초월적으로 신성하게 느껴지는 서로에게 걸맞는 상대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열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를 불태운다.

1. 제롬 -
제롬의 내면은 자유롭고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세계이다. 미숙하지만 격동하는 열정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제롬. 감정의 폭풍들, 시절의 노래…
그에게는 내면세계가 현실보다 더욱 실제적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알리사와의 관계가 오해로 얽혀 미궁으로 빠져갈 때, 그는 자신이 경멸하는 오지랖 이모가 자기 대신에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2. 쥴리에트 -
쥴리에트는 알리사나 제롬과는 다르다. 슬퍼해도 곧 털고 일어나서 그냥 잘 살 것 같다.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쥴리에트는 제롬을 좋아하지만 제롬의 눈에도 마음에도 그녀가 머물 자리는 없다. 알리사에게 푹 빠져 내면세계에 깊이 머물고 있는 제롬은 쥴리에트와 몸이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쥴리에트에 대한 제롬의 인식이 바뀌는 부분이 흥미롭다. 제롬의 친구는 쥴리에트를 흠모하는데, 얼치기같은 그 친구가 묘사하는 쥴리에트는 제롬이 알고 있는 쥴리에트와 전혀 다르다. 그 쥴리에트가 내가 아는 이 쥴리에트와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이 에피소드는 작가가 누군가에게 무관심했다가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사뭇 놀랐던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상대에게 이해를 받는 일은 많은 부분이 운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사람의 인식은 ‘목표’에 따라 초점을 맞추어 바라볼 대상과 삭제할 배경을 결정한다. 전에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롬의 사례를 보아,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자신과 달라 이해하기 힘든 반대성향의 사람을 볼 때 편견을 배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소통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

3. 알리사, 독실한 믿음과 상처의 사이 그 어딘가 -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알리사는 제롬에게 ‘각자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점차 시들어간다. 그녀가 어떤 신앙적인 이유를 내세울지라도, 그녀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그녀를 사로잡고 있다고 느껴진다. 알리사의 신앙적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알리사는 묶여있다.
알리사는 내면세계에 갖힌 듯하다.
나는 제목의 좁은문을 알리사의 삶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 문은 좁은문이라기보다는 닫힌문 같다. 그녀가 조금만 더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위해줄 수는 없었을까?

4. 내면세계와 현실세계 그 사이 -
고통 속에 있는 두 연인, 알리사와 제롬을 보며,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감정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것인가 견고한 것인가. 실재하는가. 질문하게 된다.
초반부에서는 제롬의 내면세계가 물질세계보다 커보인다. 그런데 이는 제롬이 알리사와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알리사와 오래 떨어져 있는 시간은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을 가져오고 만다. 결국, 현실세계가 내면세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 같다.

- 물질세계의 한계에 타협하고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이는 쥴리에트,
- 그 사이를 오가는 중간자 제롬,
- 결국 하늘로 돌아간 알리사.

인간은 피어났다가 시드는 꽃처럼 생명을 다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물질적인 실체, 몸을 가지고 있어서 아름답다. 이상이 가진 완벽함과 거룩함이 주는 쾌락은 강렬하나, 연약하고 무거운 몸으로 흐르는 시간을 타고 사는 현실세계 없이는 유리되어 떠돌 뿐, 실체가 없이 느껴진다... 이상과 현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을 눌러주세요

대략 15분 내외로 준비된 영상들이다.

백석대학교 심리학 박사 김현옥 교수님이 쉬운 설명으로 심리학 정보를 전달하는 채널이다.
지금까지 성격에 대한 강의, 가족에 대한 강의, 우울증, 공황장애 대한 강의 등 꽤 많은 양이 업로드되어있다.

처음에는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오가는 대중교통 안에서나 심심할 때 듣곤 했는데, 친구는 노트에 필기하면서 집중해서 듣는다고 했다.
같은 컨텐츠라도 얼만큼 집중해서 듣는지에 따라 소화흡수율이 다르겠다.

특히 성격 관련 영상들을 추천한다. 성격(편집증, 자기애성 성격장애, 의존성 등) 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떠오르거나 내 속에 불편했던 감정들을 비추어보고 객관화할 수 있다.

https://youtu.be/t4YW-H4cMq0


동산교회 목사님은 결혼, 연애 관련 강의를 유투브에 올려놓으셨다.

교인에 아닌 바깥 사람이 이를 볼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좋은 컨텐츠를 찾아 샅샅이 뒤지다보니 발견했다.

링크 결혼건축가 1
https://youtu.be/A74Xv6kkrhM

잘 찾아보면 결혼건축가 2도 있다.

결혼의 목적은 영적인 연합이다.
그러면 우리의 필요는 누가 채워주나?

인간의 인간관계에 대한 필요를 대략
1. 안정감
2. 중요감
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아마 책 내용인듯)
일반적으로 안정감은 여자에게, 중요감은 남자에게 더 핵심적이다.
그러나 이를 불완전한 인간끼리 완전히 공급하고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강의이다.
좋은 내용을 공부해서 가르쳐주는 목사님께 감사하다.


누구나 태어나며 크든 작든 달란트를 받는다.
땅에 묻어놓았는가.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주로 성경에 달란트비유 해석을 읽어보고자 들어오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런 내용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달란트비유에서는 먼 도시로 왕위를 받으러 가는 주인이 종(일꾼) 세명에게 각자의 역량에 따라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떠난다.

 

달란트는 재능, 어떤 일을 가능하게 되는 자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금수저냐 흙수저냐 환경도 포함될 수 있다. 주인은 각자의 역량에 따라? 경영할 수 있을 돈을 맡긴다. 다른 블로그 해석에 보니 양과 염소 비유에서 살펴볼 때, 달란트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동의한다. 달란트를 꼭 재능, 돈, 환경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주인이 돌아오자, 5개 받은 이는 5개를 더 만들어 10개를 가져왔고, 2개 받은 이는 2개를 더 만들어 4개를 가져왔다. 1개 받은 이는 1개를 그대로 가져온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은 한 달란트를 뭍어놓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부자 주인이 자신에게 한 달란트만 맡긴 것도 불만이었던 것 같다. ‘더럽고 치사하다! 안해안해안해! 이 불공정한 세상!’ 하는 사람이랑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보인다.

왜냐하면, 주인이 돌아왔을 때, ‘내가 당신이 굳은 사람(= 치사한 사람?) 인줄 알았기에 땅에 이렇게 곱게 묻어놓았다.’ , 당신이 다시 뺏어갈 줄 난 알았지. 남 좋은 일 시킬 일 있나! 자 여기 다시 가져가시오! 하듯 묻어놓았던 달란트를 내놓는다.

 

우리 인생에서, 자신이 받은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남들보다 적게 받았다고 부족하다고 불만만 품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주인은 네가 은행에 맡겨놓기만 했어도 은행이자가 있었을텐데, 주어진 돈(재능)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고려를 아예 안해본 너는 참 나쁘다.’ 고 하며 종을 감옥에 넣었던가 아무튼 처벌한다.

은행에 맡기는 정도의 투자는 우리 인생에서 어떤 것일까? 아주 High risk high return에 투자하지는 않더라도, 소소한 일들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는 식의 태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이 말씀을 풀이할 때, 달란트가 얼마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약시대 1달란트는 약 20.4kg정도. 6,000데나리온(드라크마)에 해당.

http://www.duranno.com/bdictionary/result_vision_detail.asp?cts_id=17061

 

A)    우리의 재능은 선물로 받은 것이다.

B)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C)    작은 재능도 다시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큰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만들고 봉사활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한편 내게 1달란트가 주어져있다면, 그것이 소소해보일지라도 여전히 그것은 귀하게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모습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되게 할까, 서로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더 깨끗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 시도하면,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서 작은 변화들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나에게 인생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즐거움은 남들보다는 좀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실패의 경험이 거듭되면서 그 기억때문에 도전을 주저하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능력이 별로 없었다.

1.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렸을 때 일기를 쓸 때면 쓸 말이 정말 어찌나 없던지... 그날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과 있었던 일에 대해 딱히 덧붙일만한 주석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숙제인 일기를 쓸 때는 글씨를 두칸에 걸쳐서 쓰고, 또 줄 간격은 2.0~3.0이었으며, 남은 부분에는 아무거나 그림을 그려서 빈 칸을 메우곤 했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은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앞으로 쓸 말이 생각나고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는 독후감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엄마를 재촉하여 독후감을 불러달라고 졸랐다. 아이 숙제는 알아서 해야 할 것인데, 엄마는 내가 워낙 쓸 수 없다고 하니, 독후감을 불러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읽었던, 남들 다 아는 콩쥐팥쥐 같은 전래동화를 가져다가 독후감 한 두세편을 몰아서 쓰고 책 권수를 채워서 독서장 대회 동장을 받는 막판 몰아치기를 하곤 했다. 그게 한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때 일로 기억한다.

글을 쓸 내용을 생각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글씨쓰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점이 남들과는 다른 것 같기도 하네...


아무튼 지금은 일기를 쓰라면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쓸 수 있다. 할 이야기는 끝도 없고, 써놓은 문장을 이리 고쳤다 저리 고쳤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문장을 일단 펼쳐놓았다가 그것을 다시 배치하고, 또 덜어냈다가 이랬다 저랬다 하다보면 참 재미나다.
(물론 내 생각은 점프점프를 하기때문에 그 연관고리를 잡아서 써주어야하지만...)

 

 

2. 자신이 대다수와 다르다고 느낀다면

남들과 다른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한번 스포츠카를 얻어 타 본 적이 있다. 시내에서 주행할 때, 차가 덜컹 덜컹 멈추는 것을 경험했고, 또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운전할 때는 약간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스포츠카가 덜컹덜컹하며 멈추는 것은 운전자가 미숙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원래 그런건가요?
당시에는 이렇게 덜컹덜컹거리는 차라면 비싸고 간지나는 외제 스포츠카라도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텅 빈 고속도로를 쌩쌩 부앙 하고 달리는 차를 탔다면 아마 그 차가 탐났을 것 같다.

어떤 이가 neurotypical 하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마치 스포츠카로 태어난 것과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스포츠카는 섬세하게 운전해야 하고, 대신에 운전할 줄 알게 되면 일반 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이렇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멋진 스포츠카를 운전하듯 다이나믹한 인생을 향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이 수동기어에, 스포츠카를 처음 운전한다면 차를 끌고 나가는 것 자체가 아주 곤욕일지 모르겠다.
이렇듯, 자동차를 그 자체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운전자가 아주 능숙하고 부드럽게 운전할 수 있을 때 그제서야 그 잠재력이 빛이 난다면.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뇌도, 주어진 몸, 달란트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어이쿠 멀리도 왔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주어진 조건 자체 보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할것인지가 중요하다

 

3. 자신을 파악해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라


자기 자신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결정들을 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야 남들이랑 비슷한 모습이 될까 하며 나를 맞추기 위한 발버둥을 칠 때가 많았다.

미운오리새끼 이야기가 떠오른다. 미운오리새끼는 다른 오리들처럼 귀여워지고 싶었지만 아주 밉게 생겼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남과 다른 자신때문에 주변에서 구박을 받았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알지 못했다.

백조새끼는 밥먹고 자고 쑥쑥 크다보니 성체로 자란다. 그런데 사람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일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잠재력은 무엇일까.
그 중에 조심스럽게 한두가지를 선택해야한다.
집중하고 끈기 있게 이어가야 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강점이었다면, 그것을 지속해서 발전시키는 노력이 연료처럼 뒷받침되어야 한다. 
잠재력은 잠재력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4. 창의성이 강점이라도 훈련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에 일치시킬 수 있도록 훈련되어있고
명확한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생에 있어 여러 분야에서 성취를 이뤄내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훈련(discipline)되었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반듯하게 개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간 약속에 늦지 않고 도착하는 것 등, 자신이 목표로 한 일을 실천해서 증명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싶다.
당신은 당신이 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가? 성실성, Conscientiousness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 성실성이 인생의 꽤 많은 영역에서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격 중 하나이다.

성실성은 인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반 이상의 중요도를 차지할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동기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가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그것에 동기부여하는, 자신이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의무만 있으면 무미건조하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의무에 의해서 하는 것은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인생은 참 짧고,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상상 속에 있을 뿐 우리는 현재만을 산다. 그런데 의무감이 어떤 일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인 사람은 그 현재를 모조리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미래에 저당잡혀서 목덜미를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그렇게 되면 삶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 <- 내가 이 일을 즐기는지 여부는 나에게 달려있지 않으며, 나는 그것을 수행했다고 체크 함으로써 죄책감을 벗어난다. 이거나 혹은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딴짓 한 일' 정도로 하루가 구성될 수 있다.

능동적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 제 1습관이 주도적으로 임하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옛날에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해야 하는 것 같은 일들 (정말 그 일이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를 판단하는 데는 시간을 그다지 투자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정작 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일을 막연히 붙들고 하기 싫어 죽겠는데 문제집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이 내게 짐을 지우고 나니 하고 싶은 일들이 희미해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싶은 것 관심 가는 것. 그 중 몇개를 소중하게 골라서 실천하고 싶다.



'■개인 > 기독교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팀캘러 [결혼을 말하다] 5장 가이드  (1) 2024.11.14
[CCM] 2022.02.13.  (0) 2022.02.10
민수기11장  (0) 2022.02.09
꿀잼잠언 - 26장 미련한 자  (0) 2022.01.26
꿀잼잠언 23:6 처세  (0) 2022.01.24

+ Recent posts